[설교] 바라봄의 영성 _시편1편
바라봄의 영성 _시편1편.3편.23편.150편
시편의 기자는 결론을 가지고 시편을 시작한다. (재구성의 목적이 담겨져 있다)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어떠한 삶으로 연결되는지를 분명히 밝히며 시작한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늘 생명력을 공급받는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 삶이 선물되어진다.
이 얼마나 멋진 삶인가. 시냇가에 심기워진 나무라니..
그런데 말입니다. 이랬던 시편의 기자가 갑자기 여호와 앞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사는 의인은 점점 쇠하여 지는 삶으로 빠져들고, 악인이 너무도 잘되어간다는 겁니다.
악인들이 잘 되고, 악인들이 성공하고, 악인들이 흥한 그런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는 매일이 펼쳐 진다는 겁니다.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이건 말도 안됩니다. 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불만을 이야기 해댑니다.
노력한만큼의 열매를 얻지도 못하고, 수고하며 흘린 땀이 나를 배신하는 결과를 얻고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억울하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시편의 기자는 절망에 빠집니다. 삶이 곤고해집니다.
매사의 모든 것과 삶의 모든 무대에 절망과 탄식의 소리나 터져나옵니다.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몸은 축나서 결국 병상에 드러눕습니다.
이쯤되면 이 시편의 기자는 우울증, 공황장애에 빠진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입니다.
그러던 시편의 기자가 다시 환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된 듯, 정직한 자기의 모습을 고백합니다.
"내가 주야로 여호와를 묵상한다고 했으면서도, 사실은 내가 악인의 흥함만 묵상하고 있었구나!?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하면서도 상황과 결론만 바라보며 나와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신뢰하지 못했구나!"
시편의 기자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를 기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모든 탄식과 절망의 소리가 기도의 소리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억울하고 대체 뭐하시는거냐는 하나님을 향한 비명소리가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함께 걷고 계시다는 고백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여호와만 나와 함께 계시면 난 됩니다. 라는 고백으로까지 올려집니다.
그는 결국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도무지 그 환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저 하나님의 이름만 연신 불러댑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요?
주야로 하나님을 묵상하십니까?
주야로 내 통장, 내 지갑, 내 성공만 묵상하십니까?
바라봄의 대상이 바뀌면 마음이 변합니다. 삶이 바뀝니다.
저는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걸어갑시다.
하나님 바라보며 걸어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