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1

<말씀과 사건, 그리고 응답>

letranger.kr 2018. 6. 18. 12:59

<말씀과 사건, 그리고 응답>

초대교회 사람들은 요한의 복음서를 받아들었을 때,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는 그 선포가 어렵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말씀', '말' 이라는 단어는 '사건'이라는 단어와 함께 연관되어 사용되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였기 때문이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말씀 자체가 사건이 되어버린, 그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의 창조라는 사건을 일으키신 그때가 회자되는 겁니다.
지금도 말씀은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심 가운데 울려지는 성령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에게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사건을 일으킵니다.

말씀에는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있으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반응을 통하여 "사건"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용서하라" 라는 말이 들려온다면, 그리고 우리가 반응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사건"으로 우리에게 드러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그래서 요한의 복음서를 통해 늘 말씀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사건 자체로 인식했습니다.
성서의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현실. 그들이 경험했고 마주하는 모든 시간들이 "사건"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사건"을 만드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말씀", 단지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고 단지 그것을 내 마음 속에 간직한채 무의미하게 죽은 말씀으로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였듯, 우리가 반응하여야만 우리 삶은 "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너희는 내게 보고 또한 가르친대로 가서 행하라" 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초대교회의 세워짐, 복음의 전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지는 일이 이 땅 가운데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사건을 일으키는 사고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반응"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을 맞이하는 가장 기초에 있는 것의 하나 입니다.

저는 예배를 인도하며, 시작기도를 할 때 이런 기도를 자주 드립니다.
"하나님,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 빛이 있게 된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여 주시고, 우리의 삶의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같은 우리 삶의 역사를 경험케 하여 주소서"
이 기도는 말씀가운데 듣고, 결단하고, 순종하자는 설교자의 청중을 향한 초대이며 요청입니다.

오늘 주님이 아담에게 물어오셨던 질문처럼, 
"아담에 네가 어디있느냐?" 라고 나에게 질문해 오신다면,
또 "너는 누구냐? 너는 어디에 있느냐?" 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져 오신다면, 
"주님 여기 저희가 있습니다. 
우리의 실패와 이상들을 깨닫게 하소서. 성서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하소서.
함께 살아갈 힘을 주소서.
함께 신실하고 공정하며 연민과 관대함이 넘치게 행동케 하소서" (성공회 기도서 중에서)
라고 작은 응답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 고린도전서 1장 19~2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언제나 진실이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아멘" 하고 응답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우리를 굳세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사명을 맡겨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