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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에세이1 2018. 6. 18. 12:57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
한 사람과의 만남은 한 존재(存在)와의 대면입니다.
존재라 함은 '있음' 이라는 의미로 쉽게 받아들이면 되겠지요.
내가 오늘 한 사람과의 만남이 가질 때, 나는 비로소 알 수 없는 시간들을 수없이 헤치고온 어느 한 존재의 현재의 '있음' 과의 만남이 됩니다.
내가 한 '있음'과의 만남에서 난 그 '있음'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우리가 그 시간들을 헤아릴 수 없기에 사실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불가능에 도전하며 늘 판단합니다. 무한도전입니다.저는 저의 '있음' 이 사람들에게 드러나기 전에, 아니 드러내기도 전에. '있음'의 상(像)이 왜곡되어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먼저는 저의 외모 때문이겠지요? 험상궂게 생긴 얼굴과 짧은 스포츠(때론 삭발)머리에 한 덩치하는 목사. 목회자 상의 왜곡에 아주 좋은 외모입니다.
또 제 상의 왜곡을 불러올 만한 것은 저의 어휘선택에 있습니다. 점잖게 포장되어진 때론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엉뚱한 거룩과 신비를 가져올 단어는 거의 쓰지 않고, 거의 날 생 것(raw)와 같은 어휘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치 않는 상이 저의 있음을 그려내고 있다는 겁니다.늘 존재, 그 있음은 내가 보고자 하는 마음에 따라 다른 상으로 보여지고, 그러한 상을 보여줍니다.
제가 한번은 올림픽공원에 가서 성화 불꽃을 찍었는데, 그 사진 속의 불꽃이 피에타(Pietà)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사진을 사진가커뮤니티에 올렸더니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그저 불꽃인데, 찰나의 순간에 그게 피에타가 된 것 뿐이었는데 말이죠.
보고자 하는대로 보이고, 보려고 하면 그리 보이기도 한다는거죠.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그 피에타상이 사실은 그저 불꽃인겁니다. 그 불꽃 자체가 존재이며, 현재의 있음 입니다.
불꽃이 피어오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타오름의 애씀에 있어서 누구도 그 지금의 '있음'을 보려하지 않는다는겁니다. 찰나의 순간의 찍혀진 사진처럼, 순간의 상대를 image화 하여 停體 시켜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린 때로 서로를 바라볼때, 선입견을 가지게되거나, 지레짐작의 판단으로 존재를 다른것으로 대체시켜버리고 보게 된다는겁니다.오늘 저는 저의 '있음'에 오해를 받은 날 입니다. 그저 보고자하는 상으로 저의 모든 있음이 곡해돼버린 씁쓸한 날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공동체로부터 오해를 받으니, 그것이 가장 큰 슬픔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추스리려 하루라는 시간을 이곳에 감정소비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제가 찍었던 한장의 불꽃 사진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불꽃,의 있음은 과연 허상으로 내게 보여지는 것일까?있는 그대로만 바라보아도 존재는 아름답습니다.
사랑해주세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그렇게.
아무 생각과 판단과 상을 그리지 않은채로.오늘 저는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던져봅니다 ..."no pasa 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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