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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배반감, 그리고 위로>에세이1 2018. 6. 18. 12:58
<자기배반감, 그리고 위로>
배신감이라는 말과 배반감이라는 말이 비슷한 듯하지만 배반감이라는 말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뚜렷한 대상이 있을 땐 배반감이라는 어휘가 더 어울리면서도 아마도 대상을 특정한다는 부담감에 배신감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쓰게 되는 건가? 괜시리 궁금해진다.
오늘은 나 자신에게 배반감을 느낀다.
믿었던 나에게 저버림을 당한 기분이 자기배반감이라고 쓰면 맞는지도 모르겠다.자기배반감은 늘 내 안에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웃프다' 라는 표현도 나에게 갖다대면 때론 그 배반감에 헛웃음이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해 내기에 충분한 말일 거 같다.
자기배반감이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병리학적으로 자아분열쯤 되는 과정의 어느 한 지점쯤에 있지 않을까 상상만 해본다.
프로이트가 자아분열을 이야기 할 때, 수용과 부인에 대해서 다루며 처음 썼던 단어이다. 그후 라캉이 또 그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내가 상담학이나 정신분석학을 전공한게 아니기에 더는 자세히 는 쓸 수가 없다..
무튼.. 자아분열의 앞의 어느지점쯤에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자기배반감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늘 느끼는 감정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웃어야 할 상황에 이유없는 불안 또는 공포, 분노 등. 수용해야 할 것을 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부인해 버리니 여기서 느끼는 자기자신에 대한 배반감은 홀로 감당하며 싸워야만 하는 치열함의 전장이다.난 오늘도 그 자기배반감이라는 전쟁터에 서 있는, 아니 다윗의 고백처럼 벼랑끝(땅끝)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오늘도 잘 살아내셨어요.
당신의 그 치열한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나 아닌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 낸 그 하루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싸움이지만 오늘도 버텼고 밀려나지 않았으니 이긴거에요.
내일은 요동치는 바다와 같은 우리의 내면이 잔잔해지기를, 아니 여전히 거친 풍랑이 몰아칠지라도 그 바람을 이겨내 보아요. 당신, 그대는 오늘도 참 잘 살았어요"그리고 찬양의 한 가사를 적어내고 싶다.
"구주여 떨리는 내 맘 저 풍랑 과 같아서
늘 불안에 싸여서 사니 날 붙들어 주소서
세상의 풍파가 나를 삼키려 합니다
지금 죽게된 날 돌아보사 곧 구원해 주소서!
큰바람과 물결아 잔잔해 잔잔해
사납게 뛰노는 파도나 저흉악한 마귀나 아무것도
주 편안히 잠들어 누신 배 뒤엎어놀 능력이 없도다!
주예수 풍파를 꾸짖어 잔잔해 잔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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